바로 그 모양새를 보고 '깝친다'라고 말할 것이다.
'깝친다'란 말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그 꼴을 보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젠장, 내가 왜 피하기만 했지? 그 대신, 치워버렸어야 했는데.. 쓸어버렸어야 했는데..
두, 세달만 되도 알아차릴만 한데, 그들은 1년이 넘도록 못알아 차리고 있다.
그렇게도 속고 나서도, 그 모양새가 만들어내는 장단에 여전히 맞춰 놀아나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이도 당했었는지 모른채 말이다. 그러고 나서도 개떡같은 개떡받고 좋아하기만 한다.
떨어져 지내보니 이젠 알아차릴만도 한데, 그들의 그 멍청한 뒷장구는 계속된다.
그리고 묵묵히 자릴지키며 무덤덤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잔머리꾼과 똑같은 모습으로 속이려 들고 있다. 꽤나 자신들이 똑똑한 줄 안다.
곰이 바보라서 곰이던가? 여우는 죽었다깨나도 곰에게 안된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어설프게 배워먹은 그 여우지랄을 곰에게 떨려하고 있다.
엿같은 나이의 문화, 선배에게로의 예우, 양보를 가차없이 무시해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하여 밀려온다. 실수에 해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찌르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하여 밀려든다.
타인의 실수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가짐
그들이 행한 행동은 더이상 실수가 아닌 듯 싶다. 뭘 모르는 것 또한 자신의 책임이다. 모르는데 따르는 불이익 역시 타당한 것이다. 왜? 무지는 게으름에서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너그러움을 표한다.. 그 너그러움은 또다른 잔머리가 아니면 과거에 잘못 만들어진 습관, 혹은 최면상태의 무엇이다. 또다른 미친 행동이다. 결코 그들은 그 너그러움에 감사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속으로 비웃을 것이다. "멍청한 놈"이라고.
그 어느때보다 더 냉철한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이 또한 수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