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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여행기(a.k.a. 학습탐사): 오스트리아 빈(Wien)

Category
프로젝트s
Tags
박문호
Wien
Vienna
학습 탐사
북유럽 여행
클로드 셰넌
루트비히 볼츠만
Created time
2025/10/01
볼츠만 묘비석 앞에서. 물리학에서나 S/W Engineering에서나 엔트로피의 중요성을 고려하자면, 볼츠만 묘비석 방문은 내게 큰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이 비석 정면에 떡하니 이동식 화장실이 놓여 비석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거. 아니 오스트리아 사람들 재정신인가? 인류사에 손꼽히는 발견을 이룬 위인을 이따위로 취급하는 게 말이 되냐는 뜻이다.

오스트리아 빈(Wien)

1일차

카타르 도하에서의 환승을 거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탐사가 시작되었다. 이 탐사는 절대 빈 시간이 없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카르눈툼(Carnuntum)이란 고대 로마의 유적지로 이동. 여기를 방문한 이유는 소위 ‘카르눈툼 회의’라 하여 동서 로마의 정제(아우구스투스), 부제(카이사르) 간의 지위 조정을 통해 당시의 혼란을 (일시로 나마) 안정시킨 사건 때문이라고. 예나 지금이나 교통 정리는 무진장 중요한 듯.
실제 역사적 유적지란 점만 빼면 대강 울나라 민속촌 같은 곳인데, 고대 로마 당시의 건축물을 아주 그럴듯하게 복원해놨다(유적지라 건축터 말고 실제 남은 건축물은 없다). 새삼 놀랐던건 외양 면에선 현대 건축물과 큰 차이가 없단거, 무엇보다 콘크리트를 이 때도 사용했단 점. 로마 당시 복장으로 요리를 하던 유적지 측 묘령의 여인으로부터 빵을 얻어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걸 사진으로 못 남긴게 한이다(내 스타일은 아니어도 이쁘긴 했는데…).
로마군 투구 모형을 쓰고 놀고 있는 나. 난 벌써 이 시점부터 이러고 따로 놀고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탐사 대원은 박사님을 따라 열심히 강의 듣고 있는 와중에. 카르눈툼 기념품 샵에서.
카르눈툼에 이어 간 곳은 빈 중앙 묘지(Wiener Zentralfriedhof)로 유명 예술가, 학자들이 묻힌 곳이라고. 여기에 유명한 사람은 클래식으로 유명한 도시 답게 베토벤,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브람스 등이 있지만 이들보다 훨씬 중요한 사람은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 실제 이 때문에 박사님이 여길 방문지로 선택한 것으로 이해한다(본 글 맨 처음 사진 참조).
볼츠만은 그 유명하고도 중요한 엔트로피(Entropy)를 미시 분석 가능한 개념으로 재정의한 위인으로, 사실 상 정보 엔트로피의 원 저자이기도 하다. 정보 엔트로피는 '비트(bit)' 개념을 만든 정보 이론의 클로드 셰넌(Claude Shannon)이 정립한 것으로, 이들 두 엔트로피 공식은 개념적 구조가 동일한데, 셰넌이 이를 세우고 보니 엔트로피와 동일 구조였던 것이다. 해서 ‘엔트로피’란 명칭을 붙인 것이고. 따라서 셰넌은 내가 몸담은 S/W Engineering의 아버지(?) 격이라면, 볼츠만은 할아버지 격이다. 참고로 AI 클로드는 클로드 셰년의 이름에서 따온거다.
아래와 사진과 같이 베토벤이니 슈베르트니, 슈트라우스니, 브람스니 이들 유명 음악가 묘비석도 사진 찍어 ’주었지만’ 솔직히 이 양반들에겐 관심 없다. 난 낭만주의를 싫어한다. 감정 과잉이다. 베토벤은 낭만파도 아닌 주제에 개오버인데, 장중함이란 특유의 똥폼까지 갖췄으니 말 다했다.
베토벤 묘비
슈베르트 묘비
슈트라우스, 브람스 묘비
여기까지가 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의 행보이고, 저녁 먹으러 Alter Bach-Hengl란 이름의 오스트리아 전통 선술집/식당에 갔는데 300년 이상된 곳이라고. 헌데 어찌나 음식이 짜던지… 아래 사진에도 보이듯 전형적인 서양식 음식인데, 개인적으로 서양식, 특히 소시지 등 고기류를 좋아라 함에도 몇점 집어 먹다 말았다. 가이드 왈, 유럽 음식은 원래 짜다고 하지만 정작 윗동네로 가선 별로 그걸 못 느꼈다. 이 선술집이 와인으로 유명하다던데 정작 와인이 주문안된 건 함정. 이는 아마도 술을 못드시는 박사님 성향에 비롯된 듯 하다.
마침 앉은 자리가 8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조 멤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박사님의 최애 오른팔이신, 탐사 사전 스터디를 이끄신 우리 조장님이 마침 옆에 있어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는 거에요?
아코,,, 정작 있는 그대로 답변하신 조장님이 아닌 내 옆과 앞에서 뭔가 한심스러운 듯한, 그리고 왜 여기 왔냐는 뉴앙스로 “일단 외워보세요”, “공부가 중국어로 뭔지 아냐”란 훈수를 거든다. 사실 내 질문이 잘못되긴 했는데, 정확히는 “왜 그리 순수 고통인 암기를 하시는 거에요?”에 해당한다(이에 대한 내 입장은 Prologue에 있다). 그 즉시 “나도 고등학교/대학교 나왔어요”, “쿵푸요”라 답하며 반발하긴 했지만, 사실 초면에 이런 논쟁적 질문을 던진 내 잘못이 크다. 그들 입장이 되었을 때 나 역시 동일한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Alter Bach-Hengl란 이름의 오스트리아 전통 선술집/식당
Alter Bach-Hengl의 음식. 이쁘장한 모양새와는 달리 너무도 짜다.
저녁 식사 후에야 빈 외곽 지역에 위치한 호텔로 이동하여 하루 일정이 끝났다. 세상에나, 이 호텔은 3성에 구글 평점도 4/5임에도 울나라 왠간한 모텔보다 못한 수준이다. 1층 저쪽 큰 방에는 왠 클럽 판이 벌어졌고 로비에는 행색이 뭔가 초라한 가족이 앉아있다. 아시아나 기장인 울 조 멤버 형님 왈, 난민이라고. 앞으로의 숙소가 다 이모양 아닌가 두려움이 엄습했는데, 다행히도 이 곳 빼곤 여행 끝날 때까지는 모두 3성 치곤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룸 메이트 형님과 맥주캔 몇개 따고 어쨌건 잠자리에 들었다. 동네 형처럼 친근감 가득했던 이 형님의 목표는 최대한 다양한 맥주를 맛보는 것이었는데 거의 매일 밤 마시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나도 꽤 오래 저녁 시간을 심심치 않게 보냈다.

2일차

사실 빈은 오래 전의 유럽 배낭 여행으로 이미 다녀온 곳으로 뭐 그닥 내게 새로운 곳은 아니다. 뚜렷히 기억 남은 곳 중 하나는 합스부르크 황가의 수집품을 전시하는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으로 전세계 왠간한 유명 미술관을 전부 돌았던 경험에 비춰도 MoMA와 함께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다. 크지 않은 공간에 액기스만 모아 놓은 곳의 이미지로, 언제건 반드시 다시 한번 더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다. 아니 근데 이게 왠일인가.
15여년 전 유럽 배낭 여행 때의 흔적. 2박 3일을 머물렀는데 대강 돌만한 곳은 다 돌지 않았나 싶다. 호스텔에서 만난 묘령의 여인과 함께 돌았던, 하지만 별다른 사건이 없어 김빠졌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이 미술관 쪽으로 가는 듯 하더니, 이와 똑같은 크기로 똑같이 생겨먹은, 하지만 정면에 위치한 자연사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그렇지, 박사님은 반드시 들르는 도시마다 자연사 박물관은 반드시 간다고 월말 김어준 방송에서 전했다. 그리고 이 탐사는 엄연히 과학 탐사다.
그의 광물 사랑이 1층 광물관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이어지는 사이, 나는 가이드를 꼬시기 시작했다. 여기 얼렁 정리하고 짧게나마 미술사 박물관을 가자고. 빈에 왔는데 여길 안가는건 말이 안되는거 알지 않냐고. 하지만 그는 나를 측은한 듯,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 듯 바라보며 일정 상 불가능하다고 전한다. 엄마야.
빈 자연사 박물관(왼쪽)과 미술사 박물관(오른쪽). 사진 흔적은 예전 유럽 배낭 여행 때 찍은거다. 자연사 박물관에선 사진을 하나도 안찍었다. 일부러. 중앙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이 높게 서있다.
김빠진 마음과 함께 자연사 박물관을 떠나니, Wien cafe volkstheater란 인근 커다란 극장 옆에 있는 카페로 가이드가 점심 식사를 이끈다. 여기도 무려 200여년 역사를 가진 곳이라고. 빈은 식당마다 몇백년인가? 여하튼 별거 없는 감자 으깬 동그랑 땡에 삶은 쇠고기에 크림 소스 얹은 요리가 점심이다. 담배 피느라 뒤늦게 들어갔는데, 마침 낀 자리가 뭔가 박자세 팀의 대모님들이 모인 듯한 식탁이다. 뭔가 내게 쏠린 듯한 질문이 이어지더니 이 중 한 분이 본인 고기를 내게 넘겨준다. 이에 질세라 또 다른 분마저. 고기를 좋아라 하기에, 양도 모자라 어쨌건 전부 해치웠다.
식사 후에는 이중 한 분이 커피를 전체에 쏘신다. 그리고 내게 커피 빚졌다 하시기에 이 은혜(?) 잊지 않겠다 답했다. 여기가 비엔나이니, 원조 비엔나 커피를 먹은 셈이다. 대모님들 중 막내가 남은 커피 크림을 티스푼으로 긁어 마시기에, “고상하기 짝이 없는 비엔나에서 우아하지 못하게”라 슬쩍 찔렀더니만, “어머나, 그런 기대를 해주셔서 감사~”라 답이 돌아온다. 강적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 분과는 여행 막판에 가서는 티격태격 웃고 떠드는 관계가 되었다. 커피를 빚진 인연은 여행 막날 페리에서의 술자리와 함께 더 큰 친근함으로 이어졌고, 이 분 덕분에 나는 많은 인생 사진을 얻게 되었다. 물론 커피 빚은 갚았다.
Wien cafe volkstheater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떡하니 벽에 있길래, 나두 떡하니 찍어주었다.
이어진 마지막 빈의 방문지는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 일전 유럽 배낭 여행 때는 성당이 지겨워진 시점이라 멀리서만 바라봤을 뿐인데, 이번에는 내부로 진입. 근데 뭐, 당시 볼 거 다 봐서 역시나 별 흥이 없다. 외양도 동일 고딕 양식인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이 더 이쁘고. 그 와중에 천주교 신자로 보이는 탐사 대원 일부가 성당 내 가장자리 기도석에 모여 앉아 기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만 내게 사진 촬영을 요청한다. 당근 찍어줌과 동시에 기도 자세 지적질과 함께(물론 장난으로 ).
슈테판 대성당 내의 십자고상. 중앙 홀 중간에 매달린 모습이 뭔가 으스스함을 자아낸다. 어쨌건 슈테판 대성당은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4세 주도로 만들어졌다는데, 그는 오스트리아를 국력, 위상을 끌어올리고 빈을 문화, 정치 중심지로 만든 대공(Archduke)이라고.
슈테판 대성당 벽에 붙어있는 정체 모를, 그리다 만듯한 그림. 그냥 딱봐도 현대화인데 묘하게 어울린다. 테레사 수녀인가? 여하튼 뽀대난다.
놀랍게도 빈의 여행기는 여기가 끝이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역사와 전통의, 문화의 도시인 빈이 어쩌다가 공동묘지, 로마 유적지, 자연사 박물관, 슈테판 대성당으로 대표되는 도시가 되었을까. 아 마저, 이 여행은 과학, 역사 탐사였지.  뭐, 앞서 전했던 대로 타 유명 장소는 일전에 대부분 돌았던지라, 게다가 당시에 극장(Kursalon Wien)에서의 앙상블, 라트하우스플라츠 음악 영화제(Filmfestival am Rathausplatz) 관람을 통해 본토 클래식 맛도 이미 봤더지라 별 아쉬움은 없다. 미술사 박물관 빼고는.
유럽 배낭 여행 당시 Kursalon Wien에서 관람한 체임버 앙상블. 뭔 노래인진 모르지만 클래식의 대표 도시인 빈에서 클래식을 생(生)으로 들었단게 중요하다.
유럽 배낭 여행 당시의 Filmfestival am Rathausplatz. 상영 음악은 베토벤이었던 기억. 스크린 벽면은 시청 외벽이다. 이 광장 가장자리에서는 맥주를 팔았다.
어쩌다보니, 일전 빈 배낭 여행기가 수준 이상으로 많아진 금번의 빈 여행기가 되어버렸다. 뭐 그래도 된다 싶은게, 당시 여행 후 후기 작성이 극초반 러시아에서 중단되서 당시 모자람을 보충하는 무엇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뭐 그럼 안될 이유가 있나(설마하니 이번에두 중두 하차하는건 아니겠지? 안그럴거 같다 )
내가 했던 건 여행인가 학습 탐사인가
이에 대해 난 아주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여행이자 학습 탐사라고. ‘학습’은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다. 특히나 외지에서의 무엇은 오히려 머리보다 감각적인 무엇, 즉 경험이 ‘학습’ 차원에서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다. 머리로 넣는 암기는 집에서도 언제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전했듯 본 학습 탐사 중 압도적으로 많았던 박물관 관람 시간 대부분을, 나는 도시 산책 시간으로 보냈는데 학습 차원에서도 최소한 내게는 더 큰 의미를 갖는 시간이었다. 도시 거리를 거닐면 그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 도시의 ‘현재’를 알게 된다. 한편 박물관 내 소장품은 ‘과거’의 무엇이다. ‘과거’는 중요하다. 하지만 내게는 ‘현재’가 더 중요하다. 과거는 현재를 위한 무엇이다.
북유럽 여행기(a.k.a. 학습탐사): 체코 프라하(Praha) 로 이어집니다.